2004년 3월 27일 (토) 날씨 : 맑음
더 이상 평가를 위한 수업은 없다
3월 30일 화요일이면 이곳을 떠나기 때문이다
앞으로 어떻게 될지, 이제 남은 건 시간이 지나는 것뿐
자대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
꿈자리도 싱숭생숭하다
꿈에서는 말이 되는 것 같지만, 깨서 생각해 보면
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꿈인가 하는 꿈들의 연속이다
사회에 있을 때의 모습이 꿈에 나오더라도,
그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
'아직 휴가도 안 나갔는데, 어떻게 이 모습을 하고 있지?'
라는 생각이 꿈에서도 드는 것을 보니
군기가 바짝 든 건지, PTSD인지 모르겠다
오늘은 사단장의 방문이 있는 날이다
공군 교육사령부 사단장의 방문이 있다고 하니,
군대의 꽃인 보여주기를 할 때다
학과 수업생 중, 절반은 실외 학과를 진행하고
남은 절반은 실내 학과를 진행한다
위의 상황을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,
사단장으로써 방문하면, 뿌듯할 수도 있겠다
빡빡이들이 실내/실외 학과장에서
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
그러나 높은 사람의 부대 방문은
그 한 순간을 보여 주기 위해
청소를 시작으로 귀찮은 일이 동시에 발생된다
역시나 온다는 단장은 안 오고, 소위, 소령 정도만
방문을 하고 학과장을 둘러보고 갔다
이등병의 입장에서야 높은 계급으로 보이지만,
사단장 앞에 서면, 뛰어다니면서 심부름할 계급들이므로,
똥짬들을 위해 이 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
허위 보고
말년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 했던가
졸업을 앞둔 시점에 사단장 방문 예정이 생기면서,
부산스러운 분위기에서 마음에 청소를 하다 보니
교육생들의 긴장이 풀어진 것 같다
교육생 중 한 명이 청소하다가 넘어져서
머리가 아프다며 입실을 한 것이다
나중에 진상 조사를 해 보니, 교육생끼리 장난치다가
한 교육생이 다른 교육생의 턱을 팔꿈치로 쳐서,
골이 아프게 된 것이다
복싱하는 것도 아니고 턱을 칠 일이 있나 생각이 들지만
당시에는 이미 벌어진 일이므로 수습이 문제였다
문제는 수습하려다가 더 커지고,
걸려서 더 큰 문제가 된다
교육생끼리 장난치다가 다쳤다고 보고하면
큰일이 날까 봐 교육생은 청소하다가 넘어졌다고
조교에게 보고한 것이다
이 이야기는 상부에 뇌진탕으로 보고가 되었고,
기술학교 교장 (대령) 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간 것이다
만약, 사실대로 보고 했다면 중대장 선에서 끝났을 텐데
일과 중 다친 사건으로 되다 보니, 정식 체계대로
가장 윗선까지 보고가 된 것이다
뇌진탕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고,
같이 청소를 한 입실한 교육생의 같은 내무실 교육생
3명을 불러서 사실인지 조사를 했다
그 결과 장난치다가 그렇게 된 것이란 것이
들통나고, 졸지에 중대장은 허위보고 한 셈이 되었다
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양록에 조교들이
동전을 던져서 식사 순서를 정한다고 적었다
그 수양록을 대대장이 보게 되었고,
이 모든 상황들이 합쳐져 내리 갈굼이 시작되었다
밥 먹기 전에 무릎 앉아 자세로 대기하고,
밥 먹고 와서는 1시간가량 학과장 학과장 백들고
팔 굽혀 펴기 하고, 쪼그려 앉아 뛰고
내무실에 들어가서는 대기 자세로 있으라고 했다
당시엔 없는 영화지만, 류승범 주연에
수상한 고개들이란 영화에서 한 대사처럼,
시간이 갈수록 희망적인 곳은 군대 밖에 없다는
말에 동의할 정도로 이런 생활도 곧 끝난다는
사실에 힘든 이 상황을 버티게 된다
비슷한 말로는 국방부 시게는 매달아 놔도
돌아간다가 있었다
이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세면세치
(세수+양치)를 하고 나니,
제1 복도 끝의 창고에서 군장류를 모두 빼라고 했다
'굴리는 게 아직 안 끝났나?'
하이바(방탄 헬멧), 탄피, 배낭, 야삽, 수통 등
분위기상 이거 다 차고, 완전 군장 구보하나 했는데
다행히 군장 숫자 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
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, 이런 일로 며칠 뒤
퇴소할 교육생을 굴리는 건 조교들도 귀찮은 일일 것이다
오후 2시 20분에 시작된 숫자 파악은
오후 5시 50분까지 했다
말년 토요일이라고 해서,
결코 만만한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
이 와중에 운이 좋은 교육생은 산불 근무였다
교육사에서 산불이 날 리가 있겠는가?
확률적으로 적지만, 만약 산불 나면 누군가 책임을
져야 하기 때문에 세운 근무 같다
원래 2시간을 근무 서는데, 기합 받을 때
이 근무자들은 빠져있어서, 총 4시간을 서게 되었다
자대 결정
기술학교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, 다른 한편에서는
우리들의 앞 날을 이미 결정지었다
오늘 오후 12시,
모든 교육생의 자대가 결정되었단 소문이 있었다
인터넷으로 들어가서 보면 안다고 하는데,
인터넷도 못 쓰는데,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
궁금하지만 알 수 없는 상황이고,
미리 안다고 해도 원하는 자대가 아니라면
그것 또한 고민을 하나 더 하게 되는 것이니,
차라리 궁금증인 선에서 끝나는 게 나은 것 같다
회식
회식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리지만,
이곳은 군대다
게다가 교육생 입장이다 보니, 자율도는 더 떨어진다
GTA처럼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
회식이라는 이름 아래 군것질 거리들을 내무실에서 먹는다
초등학교 생일잔치도 아니고, 20살 넘은 남자들이
약과, 빵, 음료수, 과자 등등에 열광하며 먹는다
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유머를 찾기 위해
지금 이 상황에서만 맞는 유머를 만들며
시간을 보내는 지경이 이르렀다
금연을 목표로 삼은 교육생들은 금연대대
그런 거 없고 담배 피운다라고 하면 흡연대대
남자들끼리 있으면서도 잘생긴 사람들을
순서대로 정하면서, 제일 잘 생긴 사람은
교장이고 그 아래로 대대장,
중대장, 훈육관, 조교, 교육생, 훈련병 등으로
계급을 지어 놓고 놀며, 하루를 보낸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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